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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파친코 (PACHINKO) |
원작 | 이민진 作 《파친코》 |
장르 | 대하드라마, 시대극 |
방영 | (공개) 2022년 3월 25일 - 4월 29일 / (회차) 총 8 부작 / 애플 TV+ 독점 |
각본/연출 | 수 휴 / 코고나다(1, 2, 3, 7회) , 저스틴 전(4, 5, 6, 8회) |
출연 |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하, 정은채, 노상현, 정웅인 外 |
시청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작품 소개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은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그러한 인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양진은 남편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해나가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유일한 자식이자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딸 선자를 묵묵히 키워나간다.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란 선자는 안타깝게도 엄마 나이 또래의 생선 중매상 한수에게 빠져 결국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불행의 나락에 빠진 선자는 목사 이삭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구원을 받게 되고, 둘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의 오사카로 향한다. 일본에서 한수의 핏줄인 첫째 노아와 이삭의 핏줄인 둘째 모자수를 낳은 선자는 친정엄마인 양진처럼 여자로서의 인생은 잊어버린 채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고생스럽게 살아간다.
선자의 형님인 경희는 어쩌면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양진과 선자보다도 더 힘든 인생을 사는 여자인지도 모른다. 경희는 불임으로 자신의 아이를 갖지 못하지만 남편에게 충실하며 가족들을 살뜰하게 보살핀다. 불의의 사고로 찾아온 불행 앞에서도 그 운명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수용한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한 여성의 삶을 안쓰럽게 만드는 지도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이 세 여성들만이 아니다. 선자의 남편인 이삭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굴레에 묶여 있었고 경희의 남편 요셉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남자라는 자신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자의 소중한 두 아들인 노아와 모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이름을 가졌음에도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경시당하고 차별받는 삶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다만, 이 두 아이는 그러한 현실을 각자의 가치관에 근거해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노아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을 극복하고자 공부에 파고들고, 모자수는 조선계 일본인에 대한 경멸과 괄시에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일본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착실하게 일하여 많은 돈을 벌어도 그들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이니치’라는 편견은 두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없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굴레였다.
이것은 드라마인가 재연 다큐인가
애플의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는 노이즈 마케팅이었는지 첫 방영 때부터 다소 논란거리가 있었으나 대한민국 국민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역사 왜곡과는 거리가 멀어서 한시름 놓았다. 적어도 4화까지는 전혀 왜곡됨이 없었고 오히려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역사 교육물로도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화. 까. 지. 는. 말이다. 해외 제작 역사 드라마가 대한민국의 과거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 감격스러운 나머지 너무 오버스럽게 떠들어 대는 건 아닌가 싶지만 일단 시청 후 들었던 느낌은 그랬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민진 작가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며 드라마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역사 학자들의 자문과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제작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한국사 및 아시아 역사학적 입장에서 굉장히 객관적이고 사실적 묘사들이 상당수 등장하므로 거짓과 과장된 요소들은 해외 제작사 드라마임에도 이례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제작 참여자들이 한국계 출신이고 한국 드라마라는 타이틀이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다뤘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역사 왜곡 드라마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의 고순도 진실 드라마라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민호가 양복 빼입고 등장한다고 해서 "강남 1970" 같은 영화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드라마는 그동안 이민호가 해왔던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4화까지의 시청 후기
오프닝 영상을 보고 시트콤인가 싶었고 처음 1화 시청 후에는 이게 대체 무슨 드라마인가 헷갈렸고 2화, 3화를 보며 그저 출세에 미친 재일 교포의 고달픈 인생을 장황하게 보여주는 듯하여 그만 보고 싶었다. 이 드라마의 치명적 단점은 아래에서 별도로 언급하겠지만 일단 1화부터 3화까지는 그냥 정신이 없는 연출과 대사들의 혼란함이 시각과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어서 더는 보고 싶지 않았으며 진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4화로 넘어가면서 모든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이제부터 서사는 시작되고 이제부터 역사의 한 복판에서 대한민국의 처절한 싸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라며 선전포고를 하듯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하였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할머니가 드디어 역경을 마주하고 일본이라는 벽에 부딪혀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흐르는 고통이 시작된 시점이 바로 4화부터이다. 또한 이야기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적재적소의 날카로운 현재 현실 투영도 인상적이었다. 분명 과거의 이야기들로 풀어가고 있지만 현재에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부당한 것들에 상처받고 무너져가는 젊은 인생들의 이야기도 잘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역사 드라마에 얼렁뚱땅 페미니즘을 넣어 변질된 PC주의 역사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우니 지켜볼 필요는 있다.
이 드라마는 여러 면에서 상당히 영리하고 약은 드라마라 생각된다. 스토리도 영상미도 평론가들이 혹할만한 요소들을 대거 삽입하면서도 일반 대중들과도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거리감을 아주 절묘하게 완급 조절한 노력이 보였다. 오징어 게임처럼 자극적이면서 신랄한 현실 비판으로 평론가와 대중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려 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대적 아픔은 결코 만만하게 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꾹꾹 눌러 사람들에 각인시키려 함이 절절하게 보인다.
이 드라마의 단점
이 드라마에도 분명 문제점은 있었다. 그러나 역사 시대극의 고질적인 문제점, 배우들의 연기, 기타 제작 관련자들과 배우들의 비공식적이며 사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언급하지 않겠다.
첫째, 역사와 현실의 인식 차이를 에둘러 설득하려 한다?
스토리는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80년대 후반 일본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인이 일본인들에게 받았던 고통들을 노골적 또는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간혹 외국인들의 시선을 빌려 대신 전달하려는 과거사에 대한 비합리적 논리를 언급하려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왜 과거에 집착하여 일을 순리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는가」 같은 뉘앙스의 장면을 넣어 “응? 설마 혹시 또 일본 편을?”이라 느낄 수 있는 애매한 부분들도 존재한다. 물론, 그런 부분들이 후반부 이야기에 어떠한 작용을 할지는 미지수이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매번 역사 왜곡으로 뒤통수치는 국가와 매국노들 때문에 늘 께름칙하다.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마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라 말한다면 애초에 깊고 무거운 주제로 이렇게 장황하고 멋들어진 방식으로 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다면 말이다. 언뜻 보면 대한민국 역사 고증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역사 인식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라는 식의 메시지가 반복된다면 오히려 역설적 역사 인식 왜곡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볼 필요가 있고 본다. 드라마를 본 후 뇌리에 남는 잔상이 묘하게 이게 맞는가 무언가 다른 말을 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둘째, 과도한 언어 혼용에 의한 국적 불명의 드라마
너무 욕심을 부린 탓인지 시대적 상황 고증을 포기할 수 없던 것인지 영어, 한국어, 일본어의 3개 국어가 미친 듯이 혼용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주 피곤하게 만든다. 한글 자막을 보는 중에 갑자기 한국어가 튀어나오면 그게 한국말로 안 들리고 ‘어? 왜 자막이 안 나오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게다가 1910년 일제 강점기와 1980년대 일본 내의 배경이다 보니 일본어 대화가 꽤나 나오는데 이런 점만 보면 일본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한국말은 일본어와 억양이 비슷한 부산 사투리다 보니 더욱 헷갈리는 부분도 있다. HBO 드라마 《체르노빌》도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만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전혀 위화감 없이 볼 수 있었기에 굳이 혼란함을 가중시키는 언어 사용이 필요했나 싶었기에 과도한 언어 혼용은 잘한 판단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회차가 거듭될수록 현재 한국 트렌드에 편승해 억지 국뽕들을 삽입한 일본 드라마 혹은 역사 그딴 거 별 관심 없고 오로지 시청률과 평론가들의 호평만 받으면 된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셋째, 과거는 현재와 같다? 시점 전환 차이를 지우다
시대 전환 시점은 뭐랄까 밥을 먹다가 소변이 급해 화장실 갔는데 큰 일을 보는 느낌? 어벤저스급으로 타임 점프가 이뤄지는데 자막도 없고 갑자기 마구마구 전환된다. 손자와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다가 할머니의 젊은 시절로 갑자기 시점 전환, 그러다가 인물이 바뀌고 현재로 왔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게 설명도 어려운데 직접 보면 참 난감하다. 3화까지 전혀 적응 안 되다가 4화쯤 적응되려 하니 그 시점 전환이 너무 뜬금없이 팡팡 튀어 버리는 등 정말 3개 국어 대사가 난무하는 걸 참아 내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 과거든 현재든 상관 말고 그냥 보라는 것인지 이해는 어렵지만 뭐 사전 제작으로 이미 촬영이 끝난 것이니 그냥 봐야지 어쩌겠나. 무언가 메시지를 담으려 한 것이라면 첫 번째 언급했던 「역사와 현실의 인식은 무의미하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시점 전환의 벽을 허물어 버린 점은 의구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그런 거라면 우리는 드라마를 잘못 이해하고 좋은 드라마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청 후 결론은?
4화까지를 평가해 본다면 수작 반열은 오르겠다 싶은 드라마라 볼 수 있고 추천하겠느냐 묻는다면 봐도 괜찮은 드라마로 추천하겠다. 같은 과거사를 다루어도 《설강화》나 《조선구마사》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드라마니 일단은 괜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외국인들도 이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고 있으니 우리도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직 끝까지 확인되지 않았기에 옳고 그른 판단은 시청자 각자의 몫인 것 같다. 일단 지켜보자, 일본에서 역사 왜곡이다 라며 성토하는 건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고 단편적인 부분들만 부각했기 때문인데 결론이 난 후 호불호가 어찌 갈릴지는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원작 소설은 평가가 좋은 반면,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지금까지는 알 길이 없으니 너무 애국심 가득 찬 마음으로 무릎 꿇고 드라마를 보지는 말길 바라는 바이다.